Pina Bausch

Revolutionist ,

Captivated the world with dance.

1940.7.27 ~ 2009.6.30

About Pina Bausch

       검은 긴 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고, 늘상 입는 검정색 긴 소매 옷으로 몸을 감싼 비쩍 마른 이 여성 안무가는 언제 어디서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다.

자신의 무용수들에게 안무 지도를 할 때도, 작품이 끝난 후 그날 공연에 대한 리뷰를 할 때도, 작품을 협의하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저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흔들림 없이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이 안무가는 춤 하나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단지 그녀의 작품이 춤으로 구분된다고 해서 무용계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음악, 연극, 오페라, 영화를 아우르며 그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녀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더구나 그녀를 만나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름 피나 바우쉬. 안무의 혁명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 무용계의 판도를 바꾸었던 이 안무가는 평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떠들어대는 것을 싫어했던 성격 그대로 암 선고를 받은 지 불과 5일만인 2009년 6월 3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세계 공연계에 큰 슬픔을 안겼다.

Hans Beenhakker ”Sweet Mambo”

Pina Bausch Unique Way of Creating Works

피나 바우쉬만의 독특한 작품 창작법

       Pina Bausch의 작품은 매우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주제, 사랑과 부드러움, 외로움과 고통, 권력의 두려움, 죽음, 포기, 사랑과 욕망, 그리고 남녀 간의 관계를 다루었다.

현대 무용의 언어에 혁명을 일으킨 그녀는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다양한 인간 감정과 실존의 표현은 피나 바우쉬 무용단만의 몇몇 독특한 특징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선 피나 바우쉬의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전 세계 어떠한 무용단보다 더욱 다양한 구성원들을 자랑한다.

20여 명의 무용수들의 출신국이 무려 16개국이나 된다니 그 얼마나 다양한 배경과 생각들이 작품에 녹아나겠는가.

더군다나 갓 스무 살이 넘은 어린 무용수부터 환갑을 바라보는 무용수가 한 무대에서 춤을 춘다.

초창기부터 피나의 무용수로 활동했고 현재는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도미니크 메르시(Dominique Mercy)의 딸도 아버지와 함께 같은 무대에 서고 있다.

 

        이토록 다양하고 강렬한 개성을 가진 무용수들을 활용하여 그녀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 피나는 완결된 개념을 가지고 안무를 짜는 대신 수많은 질문과 아이디어를 단원들에게 던짐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끌어내고 이를 작품에 반영한다.

 

‘클래스’라 불리우는 매일매일의 리허설 시간 동안 피나로부터 수십 개의 질문을 받은 무용수들은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안무자 앞에서 표현하고, 그것은 곧 작품으로 승화된다.

그렇기에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무용수들은 예민한 감성과 관찰력 그리고 저마다의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며, 이러한 각고의 노력과 열정은 시대를 넘어 피나 바우쉬의 무용단이 정상의 위치를 지키는 이유일 것이다.

        기존의 형식을 거부하는 피나 바우쉬 작품에 있어 무대 디자인은 피나의 예술세계를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카페 뮐러 Café Müller)>, <아리앙(Arien)> 등 초기 피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었던

무대 디자이너이자 그녀의 연인 롤프 보르칙(Rolf Borzik)이 1980년 1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이후부터 무대 디자이너 페터 팝스트(Peter Pabst)가 20년 넘게 그녀의 옆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흙과 물, 잔디와 꽃, 자연의 재료와 살아있는 동물 등 관객의 상상을 뛰어넘는 소재를 이용한 획기적인 무대는 작품의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무대에는 발목까지 찰랑거릴 정도로 물이 차거나, 붉은 꽃잎이 산처럼 쌓이고, 수천 송이의 카네이션이 무대를 덮고, 모래사장 위에는 난파선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을 소재로 한 2005년 작 <러프 컷(Rough Cut)>에서는 무대 뒤를 가득 덮은 거대한 흰 암벽 위를 4명의 등산객이 공연 내내 올라가 있었다. 무대 위에는 사나운 독일 셰퍼드가 짖어대고, 양이 고요히 배회하며, 살아있는 닭이 수박을 쪼아먹고, 무용수들은 뒹굴고, 첨벙대며, 나무에 오르거나, 바위 위를 기어 다닌다.

자연에서 가져온 배경과 소품들은 독특한 색과 향기 그리고 촉감으로 무뎌진 감각을 자극하며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간의 접촉의 어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접촉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모습들을 눈 앞에 펼쳐놓는다.

또한 무용수들의 아이디어 생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항상 마지막에 설치 한 구성 요소가 설치하였다.

Tanztheater

        탄츠테아터는 영어로 ‘Dance Theatre’, 말 그대로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것으로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된 양식이다. 헝가리 출신의 안무가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에 의해 처음 그 개념이 사용되었고, 그의 제자였던 독일의 쿠르트 요스(Kurt Jooss)에 의해 발전되다 피나 바우쉬(Pina Bausch)를 통해 확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고전발레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법과 연극ㆍ무용ㆍ무대미술ㆍ의상ㆍ소품 등의 융합이 특징이고, 주제적인 면에서는 일정한 플롯이나 스토리가 있기보다는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과 인간 내면의 감정, 사회적 이슈 등을 다루면서 현대 무용의 중요한 사조로 자리매김했다.

        부퍼탈 시립 공연장의 예술감독이 되어 1973년부터 <프리츠(Fritz)>와 댄스 오페라인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Iphigenie auf Tauris)> 두 작품을 시작으로 2009년 칠레를 소재로 한 마지막 작품을 공연할 때까지 피나는 자신의 무용단을 위해 총 마흔 두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가 이끄는 무용단은 1977년 첫 해외 공연을 시작해 에든버러 페스티벌, 파리와 아비뇽 페스티벌을 거치면서 피나 바우쉬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1984년 LA 올림픽 아트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공연하며 전 세계에 피나의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투어를 하는 단체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피나의 작품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표현법과 주제적인 면에서 혁신성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연된 지 3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바로 엊그제 창작된 것만큼이나 새롭고 현대적이며 시의성이 느껴진다.

그것은 연극과 무용을 넘나드는 독특하고 극적인 스타일과 인간의 실존에 관한 심오한 주제,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표현 방법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거의 모든 레퍼토리들이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이 되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여전히 공연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Indispensable

        피나 바우쉬를 떠올릴 때마다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커피와 담배 그리고 와인이다. 담배를 한 손에 든 채 작품 구상 중엔 커피를, 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와인을 들고 지인들과의 대화를 즐겼던 그녀는 세계 어느 공연장에 가든 공연장 안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는 것을 허락 받았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비행 중 전면적인 금연이 시행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세계를 투어하면서 흡연이 허락된 비행기를 이용하느라 일부러 몇 시간씩 스톱하거나 돌아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그녀의 지독한 애연 습관이 피나를 우리에게서 일찍 빼앗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피나의 자서전을 쓴 바 있는 평론가 요헨 슈미트(Jochen Schmidt)는 피나의 작품 <왈츠(Walzer)>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빗대어 피나를 표현한다.

 

  “와인 조금만 더. 그리고 담배 한 개비만. 하지만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리허설 룸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하루 종일 커피와 담배를 벗삼아 작품 구상에만 몰두했던 피나는 짧다면 짧은 생애 동안 그 어떤 예술가도 침범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 세계 공연예술계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무용과 연극이라는 장르의 벽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열정적으로 인간관계를 탐구했던 피나 바우쉬. 비록 그녀는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위대한 작품들은 남아 세계의 관객들을 오래도록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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